제6회 『백범일지』 독서 감상문 쓰기대회 백범상 수상작
김희령 (디트로이트 한국학교)
나는 지금까지 14년의 내 평생을 늘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미국 LA에서
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다녔으며, 중학교를 들어갈 무렵부터 다시 미국
미시간으로 와서 지금껏 살고 있는 내게는, 그래서인지 ‘소외감’이 가장 두려운 느낌이
다. 나라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말로 공부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이사를 다녀야만 했던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늘 주위 아이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고, 게다가 덩치마저 작은 나는 또 언제 달려들
지 모르는 그 소외감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섞여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이런 피곤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방법은
남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
람이 되는 것이었고, 의사라는 직업이 그런 것들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 내 꿈은 그래서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의사가 하는 일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직업이 나를 소외감의 두려움에서 구해주고 내게 안정된 삶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 보다 힘 세고 높은 지위를 가지는 삶, 그것이 잘 사
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김구-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라는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나라”... 내가 아는 김구라는 사람은 약해빠졌던 나라를 힘센 일본에게 빼앗
기고 불쌍하게 살던 시대의 사람이다. 나라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아니 애당초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강한 나라를 꿈꾸어야 했던 것 아닌가? 작은 덩치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가 돈 많고 안정된 삶을 꿈꾸는 것처럼. 그런데 “아름다운 나라”라니
…
김구 선생은 조선의 늦은 개화와 열강들의 아시아 침략으로 우리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던 때에, 사람을 키우는 사업에 매진하였고 그것이야말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고 책은 말한다. 힘이 약했던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강한
외국들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결국 외국에게서 진정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
닫고, 우리 손이 아니고서는 우리를 세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하고, 그곳의 젊은이들에게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날뛰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그 집단은 불필요한 다툼과 분열을 겪기 마련이다.”, “어디에 가든 ‘머리’가 되려 경쟁
하지 말고 ‘다리’가 되고자 애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자기 능력을 헤아려 낮
은 일부터 성실하게 하다 보면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아 저절로 높은 자리에 설 수 있
다는 것이다. 결국 김구 선생은 좋은 사람들이 좋은 문화를 만들고 좋은 문화는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가르치려 했던 것이 아닐까?.
김구 선생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은 선생이 젊었
던 시절,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치다”라는 일본군 중
위를 죽이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그랬던 선생이 어떻게 “우
리도 힘을 길러 복수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그것은 우리 민족이
바로 그 당시 힘으로 남을 짓밟는 오만함의 잘못을 피부로 느낀 침략의 피해자였기 때
문이리라. 우리는 힘을 앞세우는 자들의 폭력과 잔인성을 보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절
실히 느꼈고, 강한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남을 다치게 하는 약육강식의
부당함을 고통 속에서 배운 것이리라. 그러기에 나의 배를 채우는 힘과 부가 아닌, 우
리의 이웃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누리는 자유, 바로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
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를 원하게 된 것이리라. 김구는 실제로 감옥에 있는 동안
에 우리 것만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책을 읽고 뜻을 세워갔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복수의 칼을 간 것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자들에게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깨달음과 노력들이 모두 그의 스승 고능선이 그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마음 좋은 사람”으로 그를 키워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김구 선생은, 지금 처해있는
나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가진 힘으로 적을 쳐부수는 대신 품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 좋은 사람”
이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나는 돈과 지식의 힘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고 살 생각으로 의사가 되
려고 하였다. 좋은 직업과 주목 받는 삶, 그게 남들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생
각하였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그것보다 더 멋진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힘
으로 남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남들을 도와주는 것, 무리의 틈에
끼고 싶어 무리를 따라 하거나,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
정 받을 만한 것을 가지려는 것이 아닌, 남들이 공감하며 따르고 싶을 본을 보이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부강한 나라가 아닌 아름다운 나라를 꿈꾼 김구 선생
이 내게 알려주었다.
내 꿈은 여전히 의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바뀌었다. 우리나라
가 약하고 혼란하여 힘들었던 시절, 주위 나라들의 도움을 절실히 바랐던 것처럼, 지금
현재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라들,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 그 곳에 우
리나라가 절실히 바랬던 따뜻하고 순수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
다. “아름다운 나라” 한국의 “아름다운 한국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